평탄작업이 끝나고 맨땅이 풀들의 세상으로 변하는 데 두 달이면 충분했다. 방동사니가 주도권을 쥐고 왕바랭이와 바랭이가 그 뒤를 이었다. 간간이 비름이나 닭의장풀 따위가 틈새를 비집고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그 풀이 그 풀이리란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었다. 가느스름한 방동사니 가운데 도톰한 무엇인가가 날 사로잡았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노란 꽃이 피고 줄기가 옆으로 뻗은 데다 잎 모양을 보아하니 참외가 떠오르는데 참 난감하다. 추석이 코앞 아닌가. 세 군데에 걸쳐 폼 잡고 있는 이 녀석들은 대체 어디서, 왜 나타난 거람?
아무래도 뭔가 더 있을 법한 직감이 든다. 빌빌거리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잡초 시찰을 나섰다. 덕분에 쇠비름 꽃과 마주했다. 그냥 지나치기 십상일 정도로 꽃이 앙증맞다.
기대감은 부풀고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애기나팔꽃 발견! “어서와~ 여기는 처음이지?” 메꽃과 한해살이풀로 꽃말은 '허무한 사랑' 혹은 '풋사랑'이다. 고향은 북아메리카란다.
낯익은 듯 낯선 꽃도 눈에 들어왔다. 첫 인상이 덩굴해란초(or 애기누운주름잎)가 떠올랐는데 알아보니 주름잎 꽃이란다. 잎 모양이 덩굴해란초와는 약간 달라 보이는데 더 알아봐야할 듯싶다. 꽃말은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인데 의미심장하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더니 낯선 꽃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잎이 수박을 닮아 한해살이 수박풀이다. 꽃말이 ‘아름다운 아가씨의 자태’라는데 재미있으면서 아리송하다. 아침 일찍 꽃이 피어 오후에 시들어버리니 ‘아름다움’도 잠시 머물렀을 터이다. 무궁화속 식물 가운데 하나인 수박풀은 원산지가 아프리카인 한해살이다.
다음 날 이 낯선 풀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다시 과수원을 찾았다. 그런데 주름잎과 수박풀 두 녀석은 아무리 찾아도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주름잎, 수박풀과 애기나팔꽃 꽃말들을 엮어보니 그럴듯한 결론이 나온다. ‘나는 그대들을 잊지 않았는데 아름다운 자태를 더 이상 볼 수 없으니 허무하기 짝이 없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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