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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ON to MOON

식물의 사생활49

순비기나무 “골칫거리는 가라!” 몸에 나트륨이 부족한가 보다. 꽤 오래전부터 바다 내음이 그리웠으니 말이다. 바다라고 해야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데도 일부러 찾진 않았다. 뜬금없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아침, 자재를 사러 영농센터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그리운 바다로 차머리를 돌렸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이호테우 해변을 지나 도두봉 산책에 나섰다. 산책로에 접어들자 닭이 허둥대며 걷고 있다. 뉘 집 닭인지 몰라도 이 녀석도 모처럼 바닷바람 쐬러 나왔다가 집을 못 찾나 보다. 숨이 차기도 전에 다다른 정상에서 바람을 한껏 들이마시니 한결 개운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도두봉 인근 해변으로 내려갔다. 바다의 짠내가 달다. 돌이켜보니 바다 내음이 이렇게 달짝지근한 적이 없는 듯하다. 몸에 짠 기운을 충전하는 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2021. 7. 23.
산수국 앞에서 수국(水菊)의 계절이다. 올해는 산수국과 여유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한라생태숲에서 반려식물 네가지 종을 나눔했는데, 산수국이 그 중 하나다. 큰 화분에 분갈이를 하고 바라보니, 2년생 치고는 늘씬하다. 보름 정도 지나자, 가지 끝 가운데를 중심으로 꽃망울(양성화)들이 올망졸망 맺히기 시작하고, 그 가장자리에는 헛꽃(암술과 수술이 없는 무성화)이 피기 시작했다. 산수국하면 수국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산수국은 진짜 꽃(유성화)과 가짜 꽃인 헛꽃이 있는 반면에 수국은 헛꽃만 핀다. 원예종인 수국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헛꽃은 곤충을 불러들이는 바람잡이 역할을 하기에 꽃이 커서 눈에 띠는 반면에, 산수국의 양성화는 꽃들이 모여 있지만 자그만 해서 방심하면 그 존재감을 .. 2021. 6. 20.
어쩌다 마주친 때죽나무 걸어다니는 사람이 없는 길, 그나마 드물게 차가 지나가는 길, 그래서 의자를 갖다 놓고 우두커니 앉아서 쉬고 싶은 길, 그런 길에서 때죽나무를 만났다. 내 키 보다 살짝 높은 줄기 사이로 하얀 꽃들이 보인다. 꽃봉오리 대부분이 활짝 열린 채, 하늘이 아닌 땅을 내려다보고 있다.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는 모양새다. 때죽나무 꽃말은 ‘겸손’이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때죽나무 꽃의 속살을 들여다보려면 역시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무릎을 낮추고 고개를 하늘로 향해 살며시 돌려야 가능하니 말이다. 꽃이 종 모양과 비슷해 제주에서는 ‘종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종 모양의 흰 꽃을 떠올려 영어이름이 snowbell이란다. 이 겸손하고도 하얀 꽃이 어떻게 ‘때죽’으로 불리는지 그 유래가 흥미롭다. 열매껍질은 사포닌(.. 2021. 5. 23.
파종 실패? ‘플랜 B’ 있었네! 겨울 파종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봄이 언제 오나 싶어 참지 못하고 지난 1월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지난 가을에 구입한 꽃씨를 집어 들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소망도 함께 뿌렸다. 램스이어, 꽃양귀비, 블루세이지, 보리지, 끈끈이대나물, 수레국화, 금잔화, 풍접초는 싹이 잘 올라온 편이었다, 그런데 세린데와 설악초는 각각 세 개, 루피너스의 경우 두 개, 에린지움은 딱 한 개만 빛을 보았다. 심지어 담쟁이나 꽃창포, 타래붓꽃 등 몇몇 꽃씨는 새싹 구경조차 못했다. 말 그대로 싹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한낮 분위기는 벌써 여름인데다 씨 뿌린지 석 달이 지나가니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고 파종트레이에 잠들어 있는 씨앗을 생각하니 아무 데나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곳에다 파.. 2021. 5. 9.
홍가시 새잎이 펼친 레드카펫 길을 걷다가 발길을 멈췄다. 홍가시 나무 새순이 붉은 빛을 뿜어내며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 길을 걷는 기분은 어쩌면 유명 영화제의 시상식을 위해 깔아 놓은 레드카펫 위를 걷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터이다. 어느 아파트 단지 생울타리로 심은 홍가시 나무의 유혹은 치명적이니까... 아파트 단지를 들어서는 입구에도 홍가시나무가 늘어서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복(福)도 많아라! 홍가시나무 주변에 철쭉이나 굴거리나무 등 다른 식물과의 어우러짐은 그 품격을 더욱 높인다. 홍가시 새순이 올라오는 4월부터 도로 주변이나 관공서 울타리는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가치치기를 해서 정돈을 해야 나무가 지닌 가치를 최대한 살릴 수 있다. 아는 게 병이라고 다시 소유하고픈 욕망이 꿈틀거린다. 타인의 정원에도 홍가시나무가.. 2021. 4. 23.
식물 눈치보기 식물들은 이번 겨울에 내가 한 일을 알고 있다. 감나무와 귤나무 아래 화분들을 모아놓고는 무심했으니 말이다. 과수원 구획정리 한답시고 바쁜 척하거나 춥다고 잘 내다보지도 않았다. “언제는 자기들 없으면 못 살 것처럼 굴더니 사람들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어쩌다 가끔 내다볼 때마다 이 녀석들의 불만이 들리는 듯하다. 사실 지난번 오일장에서 사온 커피나무 두 개와 3년이나 함께 해 온 칼랑코에는 말라가고 있는데 희망이 없어 보인다. 이 와중에 붉은색 장미 한 송이가 아무 일 없다는 듯 꽃봉오리를 내밀고 있다. 미니장미는 추위에 시달린 기색이 역력하다. 시든 꽃봉오리와 잎을 따 주었더니 다시 여린 싹들이 돋아나고 있다. 그 옆에 있는 로즈마리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며 연하늘색 꽃을 여태 매달고 있다. 상.. 2021. 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