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59 詩 여행 with Emily Dickinson 얼추 2년 6개월이 걸렸다.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의 시를 찾아 여행을 떠나리라곤, 그리고 이렇게 길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재작년 이른 봄, 길마가지 꽃이 필 무렵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한 시집이 이번 여행의 불쏘시개가 될 줄이야. 그 영미시 모음집에는 문학적 소양과 거리가 멀지만 따분함에 못 이겨 책을 들여다보는 내게도 낯익은 시들이 더러 있었다. 그 가운데 에밀리 디킨슨은 낯설었다. ‘I'm Nobody! Who are you’, ‘Love—is anterior to Life-’, ‘That Love is all there is’ 등 모두 3편의 시가 실려있었는데 알고 보니 꽤 알려진 시였다. (에밀리의 시는 제목이 없다. 그녀가 제목을 붙인 시는 세 개다... 2026. 8. 2. 여름이 근심을 부를 때 "밭에 가서 물 주고 오너라"이른 새벽 막 솟아오르려는 해가 명(命)을 내린다. 물 한잔 들이키고 부시시한 눈을 비비며 뜨락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폭염이 내리쬐는 날의 일상은 이와 같다. 그런데 길에 있는 까치가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갈 기미가 안 보인다. "어디 아프니?" 한 마디 건네자, 고작 50cm 정도 높이의 돌담에 올라가서 애처롭게 서성일 뿐이다.새에게 날지 못하는 것만큼 치명적인 일은 없지 않은가. 마음이 착잡하다. 뜨락에 있는 담팔수 나무에는 또 다른 새 둥지가 들어서 있다. 가지치기를 하려고 나무를 살피는데 직박구리가 보금자리에 알을 낳았다. 허공을 활기차게 가로지르는 모습이 자주 보이더니 다 이유가 있었네. 창고 옆에 심은 흑장미는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뜨락 한가운데 있.. 2026. 7. 22. 윗세오름 '눈부신 하루' 2026. 2. 12. 태초에 山이 있었다 산은 평야에 앉아 있었네그 거대한 의자에 -그는 모든 것을 주시하며, 그는 모든 곳을 살펴보네 - 계절들은 무릎 주변서 노닐었네아버지 곁의 아이들처럼 -그는 나날의 할아버지새벽의 조상 - by 에밀리 디킨슨 The Mountain sat upon the PlainIn his tremendous Chair—His observation omnifold,His inquest, everywhere— The Seasons played around his kneesLike Children round a sire—Grandfather of the Days is HeOf Dawn, the Ancestor— ▮ Note 이신론(理神論)자인 에밀리 디킨슨의 이 시를 읽다보면 ‘태초에 신이 아닌 산이 있었다’는 생각.. 2026. 1. 31. 덩굴식물 조직 개편 시계초 코룰리아는 거침이 없었다. 꽃망울을 주렁주렁 달더니 연일 무더기로 꽃을 피우느라 정신이 없어, 보는 이도 정신이 팔린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난해 함께 심은 시계초 아메시스트가 코룰리아의 거센 파도에 휩쓸려 숨 막힐 지경이다. 공간이 없으니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아메시스트는 '다윗'이 될 수 없었다. 덩굴식물에 대한 점검이 불가피했다. 지난 2월 조립식 비닐하우스를 용도변경한 덩굴시렁을 살폈다. 사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는 믿음은 이미 깨진 상태였다. 흑장미는 4월 말에, 노란 장미는 5월 들어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성장이 지지부진하다. 당연지사다. 지난해 삽목해서 키운 장미가 한여름 뜨거운 햇살을 가려줄 만큼 줄기차게 줄기를 뻗을 리가 없다. 스스로 지은 생각에 속아 .. 2024. 5. 22. 화단엔 봄이 가득 뜨락에 핀 꽃을 보며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대문 위에 고개를 걸치고 빤히 쳐다 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 물었더니 대답은 없고 빙긋이 웃기만 한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 온 중국인이다. "포토, 포토!" 하며 두 손으로 네모 모양을 만든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후 부부로 보이는 두 쌍이 뜨락에 왔다. 그들은 핫립세이지와 삼색버들 곁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덩굴식물인 칡도 울고 갈 만큼 왕성하게 자란 코룰리아(시계초)를 놓칠 리가 없다. 그런데 일행 중 한 명이 나랑 같이 찍자면서 내 손을 잡아끌었다. 후기 인상파 모습을 벗어나려 내 얼굴은 최대한의 미소를 강요당했다. "셰셰!" 하면서 뜨락을 나서더니 잠시 후 소문을 들었는지 다시 한 쌍의 부부가 왔다. 이들은 달랐다. 서로 .. 2024. 5. 15. 이전 1 2 3 4 ··· 7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