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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ON to MOON
다호뜨락

창고와 아버지

by 달의궁전 2021. 10. 16.

과수원에 창고가 지어진 때가 1970년대였다. 농지법이 생기기 전이라 사실 무허가 건물이다. 슬레이트지붕을 교체하기 위한 지원을 받으려면 양성화가 필요하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꽤 복잡하다. 창고측량을 비롯해 농업경영체등록 등 서류가 7~8가지나 필요하다. 건축사를 통해 처리한다. 투기하는 '선수'들이야 잘 알겠지만 농지를 구입할 때 무허가 창고가 있으면 골치 아플 수 있으니 염두에 둬야 좋다. 시청 건축과와 농정과를 들락거리며 중간중간 보완서류를 제출해 4개월 만에 허가가 났다. 등기도 안 된 상태라 법무사를 통해 마무리를 했다.

 

 

 

창고하면 따라다는 게 있다. 아버지의 장례를 이곳에서 치뤘다. 그래서 가끔은 아버지의 숨결이 와 닿는 느낌이 일곤 한다. 어릴 적에 오토바이 뒤에 앉아 아버지의 허리를 두 손으로 감싸안아 과수원을 오가고, 방학 때면 부모님을 도와 귤을 운반하던 기억들이 고스란이 남아 있다. 창고 양성화를 마치고 해야 할 일 두 가지가 있는데, 창고 문과 슬레이트지붕 교체다. 떨어져 나가기 직전인, 낡고 녹슨 창고문 두 곳을 바꾸는 일이 급하다. 

 

 

 

견적을 받아보니 문 해체비용만 20만원이란다. 허름한 문이라서 비용도 줄일 겸 내가 직접했는데 10분 정도니 쉽게 끝났다. 나중에 나무와 양철을 분리한 뒤 나무는 태우고 양철은 쓰레기 분기수거할 때 버리면 된다.

 

 

 

태풍에도 대비를 하기 위해 창고 문틀을 각관으로 했다. 

 

 

 

겉보기엔 금방 끝날 것 같지만 수평을 맞추고 고정시키고 방수를 위한 작업이 이어지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해가 질 무렵까지도 모두 마무리가 안 돼 다음날 아침에야 끝이 났다.

 

 

 

창고문 두 곳의 마무리가 끝나자 한시름 놓았다. 창고에서 떨어져 바라보니 창고 안과 달리 정돈된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런데 해질무렵 은색 문에 바깥풍경이 드리워졌다. 생각지도 않은, 색다른 멋이 펼쳐졌다. 이거 의외로 괜찮은데? 모처럼 아버지한테 칭찬받을 일을 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