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가을을 건너뛰었다. 입동이 지나 강한 바람과 함께 등장한 비는 초여름 같은 가을에서 초겨울로 초대했다. 그래도 반갑다. 아침에 택배로 귤을 보내는 일이 주체스러웠지만 얼마만의 비다운 비인가. 오후 들어 비가 멈추자 산책 겸 나섰는데 길바닥에 훼이조아(파인애플 구아바) 열매 3개가 떨어져 나뒹굴고 있다. 지난해 활짝 핀 꽃을 보고 한눈에 반했던 기억이 선하다.
동네 건물 뒤편에 제법 큰 훼이조아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보름 전쯤 전정을 했는지 담벼락 주변에 가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지만 몇 개 주어다가 삽목을 했는데 아직 아무런 기미가 안 보인다.
어쩌다 마주친 꽃들에게 홀려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등나무도 그 중 하나다. 5월이 되면 연보라꽃이 떼 지어 피어나는 풍경은 예사롭지 않다. 며칠 전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갔다가 주변을 둘러보는데 등나무가 있는 게 아닌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채 익어가고 있어 두 개를 챙겨왔다.
꼬투리를 까보니 신기하게도 일부가 막 발아를 하려는 중이었다. 얼른 세 개를 골라 작은 화분에 옮겨 심었다.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얹는다'는 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리라.
타인의 정원에 있는 허브식물인 세이지들도 나의 짝사랑을 피할 수 없다. 가지를 잘라다 삽목을 했는데 잘 되는 편이다. 파인애플세이지는 어느새 꽃망울이 달리고 붉은 기운을 쏟아내기 직전이다.
블루세이지는 나홀로 파란 꽃을 하늘거리고, 멕시칸세이지도 보라색 꽃이 하나둘 맺혀가고 있다.
핫립세이지도 빠질 수 없는 노릇. 뒤늦게 삽목을 했지만 여린 잎들이 올라오고 있다. 세이지 네 종류가 한자리에 모일 내년 가을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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