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때가 있듯이 꽃도 때가 되면 핀다. 겨울 꽃을 보노라면 애틋함이 피어난다. 수선화도 그 중 하나다. 지난 가을 대문 길가에 구근을 나란히 심었는데 어느새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홀로 피었으되 의연하다.
뒤늦게 알았지만 비파나무도 겨울에 꽃을 피운다. 자그마한 꽃이 모여 생김새가 원뿔 모양(원추 꽃차례)을 하고 있는데, 꽃향기가 은근슬쩍 부드럽다.
올 봄에 팔삭 귤 주변에 삽목을 한 가자니아는 무서운 속도로 줄기를 뻗어간다. 해 뜨면 꽃 피고 해 질 무렵 닫는 일을 되풀이 하지만 날마다 새롭다.
바닷가 국화인 해국(海菊). 가을에 꽃이 피기 시작해 초겨울에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 흰색과 연보라색이 어우러져 소박한 품위를 연출한다. 내년 봄에 꺾꽂이를 해서 타인의 정원에 심어 볼 요량이다.
삽목을 늦게 했음에도 깜짝 꽃을 피운 파인애플세이지. 걸음마 단계라서 화려하지는 않아도 그 노력이 기특하다.
때를 벗어난 꽃도 더러 있다. 공작초 대부분은 이미 시들었는데 백년초 주변에 심은 늦둥이가 아직도 건재하고, 서양톱풀은 줄기를 곧추세운 채 흰빛을 발산하며 화사한 겨울을 부추기고 있다.
봄 같은 초겨울이라서 그런가? 미스김 라일락은 잎이 다 떨어지고 시들어가는 와중에, 그 틈새로 빼꼼히 꽃을 내밀고 있다.
그래도 때가 때인 만큼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창고 담벼락엔 단풍 옷을 벗은 채 뼈대만 앙상한 담쟁이와 아래쪽에서는 올라오는 무늬산호수가 극적 랑데부를 이루고 있다. “우리 만남은 ♬ 우연이 아니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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