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비가 오다 맑은 하늘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두렁청하게('어리둥절하다'는 뜻의 제주어)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게 살판났다. 급기야 태풍이 몰려온다는 소식이 떠들썩하다. 식물들 피난시키는 일이 급하다. 과수원 문을 열자마자 깜놀! 결명자들이 거의 다 드러누워 있다. 태풍도 안 왔는데 벌써 나자빠지면 대체 어쩌자는 건지 기가 찰 노릇이다.
일단 상동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지난해 과수원 네 곳에 흩어서 심어놓았는데 이틀 전부터 가지치기를 하며 화분에 옮겼었다.
제법 자란 상동나무들은 벽에 나란히 기대놓고, 작은 녀석들은 리어카 안에 쟁여놓았다.
뭉치면 산다고 굴거리나무, 비파나무와 황칠나무들도 한데 모아 서로 의지할 수 있게 했다.
대충 정리가 된 듯한데 비파나무에 걸어놓은 오색마삭줄이 마음에 걸린다. 설마 화분이 날아가겠나 싶어 그냥 두고, 다른 것들만 창고 안으로 임시 대피!
눈 뜨고 보니 아침이다. 태풍이 온다는데 태평하게 잠을 잤나보다. 소식을 듣자하니 강풍은 꼬리를 내리고 비만 뿌리고 간 모양이다. 과수원은 평온했다. 입구 야자수 주변의 후박나무와 아왜나무 사이로 삐죽 나온 보리밥나무의 나무초리들만 한가로이 하늘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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