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비 소식이다. 보고 싶은 책이 몇 개 있는데 도서관들을 살펴봤더니 우당도서관에 전부 있다. 책을 읽다가 일부는 복사하고 한권은 대출을 하고 나왔는데 비가 그쳤다. 산책이나 할 요량으로 도서관을 나섰다.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우당도서관으로 나 있는 길 양쪽에는 동백나무와 먼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다. 그런데 먼나무 가운데 몇 그루는 탐스럽게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열매들이 비오듯 쏟아져 내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마침 중년 세 사람이 내 곁을 지나가다, 그 중 한 여성이 “이거 뭔 나무지?”라고 묻는다.
아는 체 하고 싶은 마음에 휙 돌아서며 “방금 뭔 나무냐고 하셨어요?” 라고 묻자, 쏜살같이 “네!”라고 대답을 한다.
“그거 먼나무에요!”
“네?”라는 대답과 함께 관광객 일행은 서로 멀뚱멀뚱 쳐다본다.
“먼나라 이웃나라 할 때 그 ‘먼’자 있잖아요. 그 글자가 들어간 먼나무에요. 겨울에 달린 붉은 열매 때문에 멋있다고 ‘멋나무’라는 별명도 있어요.”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라며 일행은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웅성거린다.
먼나무들과 마주보고 길게 늘어선 동백들도 하나 둘씩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우당도서관에서 사라봉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다보니 다시 붉은 열매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천을 빼곡히 심어 놓았는데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 유심히 살펴보니 두 살 아니면 세 살배기들로 보인다.
열매는 빨갛거나 붉은데 잎은 녹색도 있지만 검붉은 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고보니 제주시 가로수 중에 먼나무가 왕벚나무, 후박나무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동백도 군락지를 비롯해 점점 눈에 많이 띠고, 남천도 가세하며 거드는 모양새다.
제주의 겨울은 거리와 숲, 울타리, 집 마당 곳곳에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다. 그리고 어느 연수원의 정원에도....
'식물의 사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양금혼초는 공공의 적? (0) | 2020.04.25 |
---|---|
봄, 꽃씨를 뿌려 봄 (0) | 2020.03.28 |
중늙은이 마음 훔치는 란타나 (0) | 2019.10.01 |
글라디올러스 엇갈린 운명 (0) | 2019.08.06 |
부레옥잠 '일일천하'인들 어떠리! (0) | 2019.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