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에서 곧추 선 줄기의 끝에서 노란 꽃이 피어난다. 무리를 이룬 꽃들은 비록 잡초라도 하나같이 정겹다. 서양금혼초는 대부분 오전 중에 꽃이 활짝 핀다. 꽃이 피려면 적어도 한 시간이 넘는 햇빛을 받아야 한다. 꽃이 피기 시작한 뒤 서너 시간이 지나면 다시 꽃잎을 닫기 시작한다. 비오는 날에는 아예 꽃잎을 열지 않는다. 꽃가루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서양금혼초는 여러해살이풀로 유럽이 고향이다. 1980년대 초, 목초 종자와 섞여 국내로 들어와 제주 전역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국화과로 잎 모양이 고양이의 귀와 비슷하다하여 Cat’s Ear라고 한다. 얼핏 보면 민들레처럼 보여 ‘민들레아재비’라 불리며, 제주에서는 ‘개민들레’로 통한다. ‘아재비’, ‘개’란 꼬리표는 비슷하거나 가짜를 뜻하니 False Dandelion(가짜 민들레)로도 불린다.
그런데 이 녀석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산과 들, 빈터를 점령하여 토종식물을 몰아내는 '주범'이라 한다. 추위를 잘 견디며, 한 개체가 1년에 2,500립 이상의 종자를 맺어 번식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제초제도 잘 먹히지 않는다고 한다. 생태계 교란 식물이란 딱지가 그냥 붙은 게 아니다. 어떤 이는 퇴치불능의 독초를 일망타진해야 한다며 날을 세운다. 물론 좋은 면도 없진 않다. 다른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는 타감 물질(他感物質, aleochemical)이 있어 천연 제초제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또 관절염과 아토피질환을 완화시키거나 주름개선에 효과도 있어 특허를 낸 연구소도 있단다.
어쨌거나 과수원이라고 이 녀석을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 서양금혼초의 습격은 3월말 쯤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풀들의 동향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는데 빈 공간을 중심으로 눈에 띄게 불어나고 있었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30여개가 되는 서양금혼초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은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낫 대신 골갱이(호미)를 들어 뿌리째 캐어 뒤집어 놓으면 마치 배추를 뽑아 올리는 느낌이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서양금혼초가 귤나무 아래쪽도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뱀딸기와 떡쑥, 뽀리뱅이 등 다양한 풀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말이 이걸 두고 하는 말일 터이다. 무리 지어 핀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왕성한 번식력으로 과수원을 독차지하도록 구경만 할 수는 없다. 외래종에 대한 부정적 시선때문이 아니다. 잠시나마 모여 사는 여러 풀들이 선사하는 재미를 잃어버릴 순 없다. 또 봄에만 꽃이 피는 토종민들레와 달리 따뜻한 곳에서는 겨울까지 꽃이 핀다니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서양금혼초 덕분에 풀과의 씨름은 이미 시작됐다. 근데 말이다. 천연제초제 역할도 한다니 이 녀석을 뽑아 놔두면 혹시 바랭이나 방동사니 같은 성가신 풀들이 덜 생기는 행운이 찾아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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