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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ON to MOON
식물의 사생활

서양금혼초는 공공의 적?

by 달의궁전 2020. 4. 25.

♣ 오른쪽 서양금혼초의 일러스트 출처는 Google

 

 

뿌리에서 곧추 선 줄기의 끝에서 노란 꽃이 피어난다. 무리를 이룬 꽃들은 비록 잡초라도 하나같이 정겹다. 서양금혼초는 대부분 오전 중에 꽃이 활짝 핀다. 꽃이 피려면 적어도 한 시간이 넘는 햇빛을 받아야 한다. 꽃이 피기 시작한 뒤 서너 시간이 지나면 다시 꽃잎을 닫기 시작한다. 비오는 날에는 아예 꽃잎을 열지 않는다. 꽃가루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 꽃잎을 닫기 시작하는 서양금혼초

 

 

서양금혼초는 여러해살이풀로 유럽이 고향이다. 1980년대 초, 목초 종자와 섞여 국내로 들어와 제주 전역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국화과로 잎 모양이 고양이의 귀와 비슷하다하여 Cat’s Ear라고 한다. 얼핏 보면 민들레처럼 보여 민들레아재비라 불리며, 제주에서는 개민들레로 통한다. ‘아재비’, ‘란 꼬리표는 비슷하거나 가짜를 뜻하니 False Dandelion(가짜 민들레)로도 불린다.

 

♣ 과수원 곳곳에 서양금혼초가 부쩍 늘었다.

 

 

그런데 이 녀석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산과 들, 빈터를 점령하여 토종식물을 몰아내는 '주범'이라 한다. 추위를 잘 견디며, 한 개체가 1년에 2,500립 이상의 종자를 맺어 번식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제초제도 잘 먹히지 않는다고 한다. 생태계 교란 식물이란 딱지가 그냥 붙은 게 아니다. 어떤 이는 퇴치불능의 독초를 일망타진해야 한다며 날을 세운다. 물론 좋은 면도 없진 않다. 다른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는 타감 물질(他感物質, aleochemical)이 있어 천연 제초제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또 관절염과 아토피질환을 완화시키거나 주름개선에 효과도 있어 특허를 낸 연구소도 있단다.

 

 

 

어쨌거나 과수원이라고 이 녀석을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 서양금혼초의 습격은 3월말 쯤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풀들의 동향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는데 빈 공간을 중심으로 눈에 띄게 불어나고 있었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30여개가 되는 서양금혼초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은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낫 대신 골갱이(호미)를 들어 뿌리째 캐어 뒤집어 놓으면 마치 배추를 뽑아 올리는 느낌이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서양금혼초가 귤나무 아래쪽도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뱀딸기와 떡쑥, 뽀리뱅이 등 다양한 풀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말이 이걸 두고 하는 말일 터이다. 무리 지어 핀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왕성한 번식력으로 과수원을 독차지하도록 구경만 할 수는 없다. 외래종에 대한 부정적 시선때문이 아니다. 잠시나마 모여 사는 여러 풀들이 선사하는 재미를 잃어버릴 순 없다. 또 봄에만 꽃이 피는 토종민들레와 달리 따뜻한 곳에서는 겨울까지 꽃이 핀다니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서양금혼초 덕분에 풀과의 씨름은 이미 시작됐다. 근데 말이다. 천연제초제 역할도 한다니 이 녀석을 뽑아 놔두면 혹시 바랭이나 방동사니 같은 성가신 풀들이 덜 생기는 행운이 찾아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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