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NOON to MOON
식물의 사생활

후박(厚朴)한 나무처럼

by 달의궁전 2020. 5. 9.

♣ 꽃과 잎들이 터져 나오는 후박나무.

 

 

잎을 떨쳐버리고 빈 가지로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자신도 떨쳐버릴 것이 없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나무들에 견주어볼 때 우리 인간들은 단순하지 못하고 순수하지 못하며, 건강하지도 지혜롭지도 못한 것 같다. 그저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만 하고, 걸핏하면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면서 폭력을 휘두르려 하며, 때로는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콕 막혀 어리석기 짝이 없다. <법정 스님-버리고 떠나기 >

 

스님은 후박나무의 마지막 한 잎마저 떨어지는 모습에서 버림과 비움이라는 지혜로운 삶을 떠올렸다. 그런데 후박나무는 늘 푸른 나무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스님이 말하신 그 나무는 일본목련이었다.

 

♣ 오라올레길에 있는 일본목련

 

 

스님이 평생 ‘후박나무’라고 알고 있었던 그 나무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자라는 늘푸른 잎을 가진 진짜 후박나무가 아니라 일본목련(日本木蓮)이다. ······ 일제 초기에 우리나라에 들여와서 지금은 조경용으로 널리 심고 있다. 일본에서는 ‘호오노키(朴木)’라고 하는데, 껍질을 약으로 쓸 때는 생약명이 후박(厚朴)이다. <박상진 - 우리나무의 세계 >

 

 

후박나무가 요즘 소리 없이 요란하다. 꽃들이 얼굴을 한창 내밀고 그 주위로 새잎이 마구 돋아나고 있다. 암수한꽃으로 겨울눈은 꽃눈과 잎눈이 합쳐진 혼아(混芽)이다.

 

 

 

여기저기 솟아나는 새순은 짙은 붉은색을 띠며 푸른 잎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후박나무는 어딜 가나 만날 수 있어 흔하다. 흔하지만 품위를 잃지 않는다. 인정이 두텁고 거짓이 없음을 뜻하는 후박하다가 이 나무의 존재감을 잘 보여준다. 과수원 울타리에 서 있는 후박나무 아래 있노라면 마음은 마냥 넉넉하고 따뜻해진다. 꽃말이 '모정(母情)'인 이유를 알겠다.

 

 

 

또 생명력이 강해 과수원 울타리와 귤나무 주변에는 어린 후박나무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다. 열매는 국내 자생 녹나무과 식물 중 가장 먼저 익으며, 2주 정도면 자연발아도 가능하단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면 후박나무 숲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닌 듯하다.

 

 

 

신제주 일대에 심어놓은 담팔수가 고사하는 바람에 후박나무들이 그 자리를 메꿔간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왕이면 후박한 인심도 피어나면 금상첨화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