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또 다른 의미는 단풍과 낙엽이다. 평균수명 기준으로 나 또한 늦가을에 접어들었다. 하여 나와 단풍은 늦가을이란 공통점이 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 아니던가. ‘나’는 단풍과 어울리려고 한라산으로 향했다.
▶ 영실 탐방로로 가는 길에 단풍이 든 모습. 한라산 단풍은 절정을 지나 어리목과 영실 계곡 주변을 중심으로 멋스러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어리목 매표소로 가는 길목은 울긋불긋한 잎들로 화려하다. 잎에 안토시아닌 색소가 많으면 붉은색을, 카로티노이드 색소는 노란색을, 탄닌 색소는 주로 갈색을 띤다고 한다.
한라산 등산로를 들어서니 ‘화장’을 한 잎들의 일렁거림은 이어지고 내 마음도 술렁거린다.
그러나 해발 1200m를 넘어서면서 나무숲은 늘푸른 나무와 가지를 드러낸 나무들의 세계로 남아있다. 해발 1400m를 지나 사제비동산부터 확 트인 벌판이 나온다.
만세동산에 들러 팔짱을 낀 채 저 멀리 우뚝 솟은 백록담과 발아래 펼쳐진 오름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잠시 아무 생각이 없다. 다시 윗세오름을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윗세오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영실방향으로 가는 길목에 족은오름에 오른다. 서귀포 방향으로 범섬이 보이고 그 오른편으로 산방산도 보인다.
선작지왓을 지나 영실기암을 향하는데 고사목(枯死木)은 죽어서도 살아있는 운치를 보여주고 있다.
영실기암 주변을 보니 단풍의 수려함은 이미 마감을 했다. 그렇다고 끝난 게 아니다. 또 다른 멋스러움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단풍 못지않게 시선을 사로잡는 나무가 있었다. 참빗살나무!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채, 늦가을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다. 익은 열매들 일부는 갈라져서 씨를 덮고 있는 종의(種衣)를 드러내고 있다.
단풍은 이제 영실 탐방로 입구로 갈수록 활기가 넘쳐흐르고 매표소로 가는 길목까지 쭉 이어진다. 단풍은 잎들이 세상과의 ‘이별’을 위한 신호다. 날씨가 추워지면 뿌리에 필요한 수분은 줄어들고 잎을 통해 빠져나가는 수분은 큰 변화가 없어 불균형이 생긴다. 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잎을 떨궈내야 한다. 잎과 가지 사이에 차단막 역할을 하는 ‘떨켜’가 생기는 이유다. 이 떨켜로 인해 물과 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는 잎은 단풍이 들고 마침표를 찍는다.
나무가 살아가기 위해 잎을 떨궈야하듯이, 내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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