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명자(決明子) 꽃이 하나둘 피기 시작했다. 노란 꽃잎이 고개를 숙인 모습이 다소곳하다. 꽃말이 ‘수줍음’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 다른 꽃말은 ‘광명’이다. 눈을 밝게 해준다는 결명(決明)이란 이름과 통하니 일리가 있다.
결명자 꽃을 보니 보름 전쯤 안과에 다녀온 일이 스친다. 눈이 침침한 느낌이 들더니 책이나 휴대폰을 가까이서 보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노안(老眼)? 부랴부랴 눈 영양제를 구입해서 챙겨 먹기 시작했는데 내친김에 병원으로 향했다. 연륜이 물씬 풍겨 나오는 의사는 “이상 없는데!”하고 퉁명스럽게 말을 건넸다. 눈 상태는 변함없고 빈손으로 오긴 허전해서 눈에 넣는 약을 처방 받았다.
지난 5월 중순쯤, 과수원 창고 뒤편에서 무더기로 싹이 올라온 결명자는 우연이 아닌 듯싶다. 씨앗들이 어디서 날아와 둥지를 텄는지 지금도 알쏭달쏭하다. 돌 틈바구니서 싹들이 일제히 올라오는 게 결명자는 생존력이 강하리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린 싹들을 최대한 캐서 미니화분에 옮겨 심은 후 뿌리가 자리를 잡자 지금의 귤나무 아래로 다시 옮겨 심었다. 두 달이 지난 지금 결명자는 파릇파릇 잘 자라 어느새 무릎 높이까지 올라오며 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결명자 효능을 찾아보니 그야말로 만병통치다. 눈은 말할 것도 없고 신장, 간, 고혈압에 좋고 혈액순환을 도우며 변비에도 좋단다.
머지않아 꽃이 진 자리에는 꼬투리가 들어설텐데 잘 익은 것부터 따서 열매를 채취할 일만 남았다. 하루 이틀 햇볕에 잘 말린 뒤 볶아서 차로 마시면 침침한 눈이 좋아질까? 예기치 않게 등장한 결명자이니 우연을 가장한 인연이리라. 자연이 내게 말을 걸어왔으니 귀 기울여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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