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텃밭운영은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조촐하다. 3월부터 꽃씨 파종을 시작으로 과수원 풀도 베고 주변 식물들을 모으고 삽목을 하다 보니 여유가 없다. 이 와중에 방울토마토와 왕토마토는 꽃을 피우고 어느새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다.
고추는 아침-저녁엔 선선해서 그런지 성장이 더디지만 꽃이 피기 시작했다. 깻잎과 상추도 잘 자라줘 그런대로 고맙다.
시험 삼아 씨앗을 뿌린 당근도 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기대가 크다.
먹다 남은 감자를 쪼개 심었는데 탈 없이 잘 자라주고 있다. 그런데 5월 1일에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늦은 오후, 나무를 옮겨 심고 삽목을 한 곳에 물을 주고 와보니 감자 이랑이 파헤쳐져 있었다. 4월 중순에 감자 잎을 솎아주고, 그 솎아준 잎을 심은 가운데 부분이 훼손된 것이다. 뿌리까지 보인데다 주변 감자 잎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 판단컨데 꿩이 한 짓임이 틀림없었다.
흙을 덮어 원래상태로 복구했는데 일주일 후 또 불상사가 일어났다. 지난번과 똑같은 곳이 파헤쳐져 있었다. 나름 잘 지내려는 내 마음은 몰라주고 되레 미운 짓만 골라하니 참 고약하다. 변화를 주면 달라질 듯싶어 양파망을 두둑에 깔고 고랑에 걸쳐놓은 후 그 위에 흙을 덮었다. 그리곤 “딴 데 가서 놀아줘!”라는 팻말을 꽂아 두었다. 놀지 않고 배웠으면 알아먹겠지!
그로부터 3일 후. 나무에 물을 주고 오는데 먼발치서 꿩이 황급히 달아나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 서둘러 감자 심은 곳을 가보니 황당 그 자체였다.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반대쪽 두둑이 파헤쳐져 있었다. 발소리가 들리자 꿩이 이랑을 파헤치다 말고 줄행랑을 친 것이다. 벌써 세 번째다. 약이 올랐다. 범행 시간이 주로 오후 5시 전후이니 그 때 쯤에 숨어서 살펴보기 했다. 현행범으로 체포는 못하더라도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이틀간 숨어 살폈다. 결국은 실패.
골치 아픈 녀석은 꿩만 있는 게 아니다. 고양이 두 녀석이 가끔씩 나타나는데 누런색과 검은색이다. 한번은 아기 울음소리처럼 들려와 주변을 살펴보니 창고 구석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누는 대화가 아마 “너, 나 좋아해?” “아직 생각 중이야!” 대충 이 정도 같다. 그런데 많은 비가 온다는 예보에 화분들을 창고 쪽에 옮겨놓았는데 다음날 와서 보니 뒤집어지고 난리가 났다. 범인은 이쪽을 가끔 들락거리는 검은 고양이가 분명하다 .
세 번째 감자 이랑 훼손사건 이후 한동안 평온했다. 꿩이 정신을 차렸는 가 싶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5월 24일! 급기야 네 번째 참사가 벌어졌다. 예전과 똑같은 곳이 더욱 심하게 파헤쳐져 있었다, 잘 자란 감자 뿌리가 드러나고, 양파망도 파헤쳐진 흙에 덮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꿩한테 머리를 ‘꽝’하고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비통한 마음을 추스르며 두둑을 원래대로 만들다가 골프공만한 감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놈이 날더러 이거 먹으라고 한 짓이야? 병 주고 약 주는 꿩이로구나!
최후 수단을 궁리한 끝에 꿩이 늘 노리는 두둑 주변에 돌을 덮어 놓았다. 마무리하고 보니 마치 돌무덤처럼 보인다. 꿩이 왔다가 무서워 달아나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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