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찍이 보이는 잔디는 평온하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누렇게 떠 있지만 통일성을 유지하기에, 계절과 무관하게 존재가치는 변함없다. 가까이 다가서서 잔디를 밟을 때 오는 감촉은 부엽토가 깔린 흙길을 걷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누런 잔디밭 곳곳에 한겨울 푸르름을 뽐내는 풀들을 발견하는 순간 잔디예찬은 막을 내린다. 찰리 채플린이 말한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란 말은 잔디밭에서도 진리로 통한다. 채플린의 이 말은 지상에 떠도는 온갖 아포리즘(aphorism·명언) 가운데 단연 돋보인다. 물론 부귀영화를 팽개치고 수행에 ‘몰빵’한 끝에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은 연기법(緣起法)과 비할 바 못 되지만...
잔디를 점령한 풀은 뽑아야 한다. 문제는 토끼풀이다. 그대로 놔두면 잔디는 ‘사느냐 죽느냐’라는 운명의 기로에 설 만큼 위협적이다. 들판과 잔디밭에 있는 토끼풀의 존재감은 각각 하늘과 땅 차이 만큼 크다. 토끼풀의 꽃말은 '행운'이다. 어렸을 적에 눈을 부릅뜨고 행운의 네 잎을 찾던 추억을 접을 수 없다면, 잔디는 불운을 달게 받아야 할 운명에 처한다. 행운을 버리고 잔디를 선택하는 이유다.
토끼풀은 생명력이 강하다. 줄기가 땅으로 기어가면서 그 줄기 마디에서 뿌리를 내린다. 토끼풀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래서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잎만 뜯어내면 ‘언 발에 오줌누기’가 되고 많다. 물론 잔디는 살리고 풀만 죽이는 제초제도 있고 여러 가지 민간요법도 있다. 그러나 토끼풀이 세력을 확장하기 전에 손을 놀려 제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토끼풀을 제거할 때 중심부에서 시작하면 꼬이기 십상이다. 토끼풀이 번진 가장자리에서 바깥쪽으로 잔디를 헤집으면 줄기가 은밀하게 숨어 있고, 뿌리를 내려 갓 태어난 잎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그걸 손으로 살살 걷어내면 꽤 긴 줄기가 올라온다. 내 경험상 이렇게 가장자리 먼저 공략을 한 뒤 중심부로 향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다만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물론 토끼풀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토끼풀을 어느 정도 제거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그 자리는 텅 비어 쓸쓸하다.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진 머리와 비슷하다. 그래서 조금은 슬프다. 허나 궁극적으로 그 텅 빈 자리는 채플린이 말한 희극이나 비극을 넘어선다. 그저 차별 없는 본래 자리를 찾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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