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자주 타인의 정원 화단에 가 있다. 해 뜨기 직전 눈이 뜨이자 커피 마시고 부랴부랴 과수원에 가서 파종해서 자란 모종들을 챙겼다. 이번엔 보리지와 풍접초, 금잔화를 모시고 갔다.
중문 가는 길, 평화로(路)는 안개가 자욱해 그다지 분위기가 평화롭지 않다. 차량 충돌을 목격한 뒤 두 눈을 부릅뜨고 가까스로 헤쳐나갔다. 정원에 도착하자 맨 처음 시선을 사로잡은 건 수호초들의 우러름을 받으며 화사하게 꽃을 피워 올린 철쭉이었다.
그럼에도 오늘의 식물은 공조팝나무였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하얀 꽃들은 색깔논쟁을 벌이기라도 하듯 바로 옆 수양단풍의 검붉은 잎들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지난번에 심은 세린데와 루피너스, 캐트민트는 다행히도 별 탈이 없어 보인다. 무스카리와 튤립은 거의 시들었고 뒤늦게 핀 튤립 하나만이 온 힘을 다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뒤편에 하얀 꽃을 피워올린 철쭉의 기운을 받으며...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발아시켜 타인의 정원에 갖다 놓은 연(蓮)이 새잎을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닌가. 살았으리란 기대를 접고 버리기가 귀찮아 그냥 방치해 두었는데 살아있다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혹시 운 좋게 올해 연꽃을 보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용기를 바꿔줘야 할 듯싶다.
나무화분 안에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한해살이 공작초를 심었는데 해가 바뀌면서 모두 제거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어린 싹들이 빼곡히 올라오고 있었다. 공작초 씨앗들이 나무화분 안에서 자연발아를 한 것이다. 게다가 캐모마일도 드문드문 자라고 있었다. 공간이 비좁아 감당이 안 될 듯해서 캐모마일은 모두 캐서 미니화분에 옮겨 심었다.
한해살이 식물들의 재탄생은 길가 화단에서 정점을 이루고 있었다. 코스모스와 공작초가 촘촘하게 새싹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지난해 파종한 샤스타데이지는 이미 꽃을 피워올리며 세력 확장에 여념이 없어 이들과의 한판승부가 불가피하리라. 올 여름 꽤나 시끄럽겠는데!
'他人의 정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부살이, 식물의 내 집 마련 (0) | 2021.04.18 |
---|---|
화단의 감초, 화사한 철쭉 (0) | 2021.04.11 |
튤립이 무스카리를 만났을 때 (0) | 2021.03.24 |
막 오른 꽃들의 전쟁 (0) | 2021.03.19 |
봄, 화단 청소 (0) | 2021.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