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 교목인 주목이 나의 ‘주목’을 받게 된 건 지난 가을.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지만 상당수 잎이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멀쩡하던 나무가 느닷없이 앓기 시작하면 손쓸 도리가 없는 나도 앓는다. “주목이 좀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그래도 겨울 분위기와 어울리는데요.”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내 딴에는 그럴듯한 멘트를 주인장에게 날렸다.
주목 자리에 무얼 심을까 고민하다가 정원에 있는 카나리아야자수가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커다란 야자수 바로 옆에 작은 야자수 2개가 모여 있어서 어차피 가운데 나무는 들어내야 했다.
뿌리를 최대한 다치지 않게 삽으로 조심조심 흙을 파냈을 때만 해도 일이 쉽게 끝날 줄 알았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가운데 야자수가 상대적으로 작았을 뿐이지 막내와 함께 들고 운반하기엔 힘에 부쳤다. 결국 바퀴 달린 이동식 운반카트의 힘을 빌려야 했다. 누렇게 뜬 줄기들을 잘라낸 뒤 아담한 카나리아야자수는 마침내 주목의 빈자리를 채웠다.
카나리아야자수는 대서양에 있는 군도, 북서아프리카 본토에서 108㎞ 이상 떨어져 있는 카나리아 제도가 그 기원이라고 한다. 내한성이 강해 영하 10도 안팎에서도 버틸 수 있단다. 카나리아야자수를 눈여겨보게 된 건 지난해 여름이었다. 커다란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을 보며 잠시나마 카나리아 제도에 휴양을 온 듯한 기분을 누렸다.
야자수들 둘러싸고 있는 줄기의 커다란 틈새는 식물의 보금자리로 손색이 없다. 지난해에는 줄기 틈새에 풀들이 자라더니 어느새 어린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야자수가 파헤쳐진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주변에 낯선 새싹들이 삐죽삐죽 올라와 있다. 세어 보니 수십 개나 된다. 이건 또 뭐지? 설마! 살며시 한 개를 집어 들어 살펴보니 자연발아한 카나리아야자수가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옮겨 심은 야자수도 자연발아 한 뒤 무럭무럭 자랐구나! 일복이 터졌지만 느낌은 좋다. 일단 미니화분에 옮겨 심어야겠다. 이 많은 게 잘 자라면 그 다음 뭐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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