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장이 고민을 많이 했을 법하다. 흩어져 있는 오죽(烏竹)을 한 곳에 모으잖다. 대형 목재 화분과 흙(밭흙, 마사토, 배양토)은 준비 되어 있는데 역시 옮기는 게 문제다. 화분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세 사람이 들어야 옮길 수 있다.
부지런히 삽질을 한 끝에 세 개의 오죽은 마침내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오죽도 팜파스그라스만큼 억세니 설마 죽겠나 싶으면서도 조금은 불안하다. 며칠 지나서 보니 잎이 파릇파릇 살아 있어 일단 안도! 그런데 맨 왼쪽에 4m 정도 되는 오죽 줄기가 검게 변해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멋스럽다. 새 보금자리가 맘에 들었나보다.
지난번 사투를 벌이며 캐어내 포기나누기를 한 팜파스그라스도 오죽처럼 대형 목재화분에 옮겨 심었다. 수련(睡蓮)은 긴급 공수했다. 때마침 타인의 정원 인근 한 농장에서 일부 팔고 있었다. 인연이 묘하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하얀 꽃망울이 보인다. 참 기특한지고...
문그로우를 목재 화분에 심고 나서 몇 걸음 물러서 바라보니 유리창에 비친 풍경이 되레 흥미롭다.
길거리 화단은 변함없이 풍성하다. 지금은 코스모스와 공작초가 만발하고, 란타나가 꽃망울을 부지런히 터뜨리고 있다.
길가 담벼락 틈에는 자연발아한 공작초가 피서를 즐기고, 샤스타데이지는 자리를 잘 못잡았는지 힘에 부쳐보인다.
길거리 화단과 달리 정원 안쪽은 꽃들이 드문드문 피어 한가롭다. 올 봄 파종해서 발아한 다알리아와 라바테라가 막 꽃을 피웠고, 설악초는 꽃보다는 잎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2층 난간에서 붉은색 꽃을 피운 능소화는 한여름 정원의 매력포인트로 자리매김을 하고, 생태숲에서 분양 받은 산수국도 첫 꽃이 피어나 내년에는 풍성한 모습이 기대가 된다.
홀로 먼저 꽃을 피운 구절초도, 무리를 지어 꽃대를 올린 부처꽃도,
서로 이웃하고 있는 맨드라미와 루드베키아, 그리고 맥문동과 무늬 옥잠화 모두가 말없이 자기 일에 충실하다.
여름 한가운데 나무를 옮겨심기하느라 올해 큰일은 다 마친 기분이다. 그저 풀이나 관리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만의 오해일 수도 있다. 철쭉에 벌집이 들어서 있는 걸 봤으니 말이다.
'他人의 정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냥이의 식후삼매경 (2) | 2023.05.01 |
---|---|
"굿바이 무더위" 꽃들의 배웅 (0) | 2022.08.21 |
Mission Possible (0) | 2022.06.11 |
붉거나 하얀 봄 (0) | 2022.05.01 |
홍가시나무 꽃과 첫 대면 (0) | 2022.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