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달의궁전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무소주 이생기심 <금강경>
<법상 스님>
내 앞에 펼쳐지는 모든 대상에
마음을 머물러 집착할 바는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각각의 모든 대상에 제 아상만큼 '착(着)'을 두고
거기에 마음을 빼앗겨 버립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 바로 이것입니다.
'착심', '머무르는 마음'인 것입니다.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아 머무르지 않는다면 괴로울 것이 없습니다.
괴로움의 대상이 모두 허망한 것임을 안다면
거기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괴롭고, 화나고, 답답하고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일어남' 그 자체는 어쩔 수 없으며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일어난 그 경계에 머물러 '착'을 두는 데에 있습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좋은 것, 싫은 것을 보고도 그 대상에 마음이 머물면 안 됩니다.
칭찬이나 비난을 듣고도 그 소리에 마음이 머물면 안 됩니다.
좋은 맛, 싫은 맛에 마음이 머물 필요도 없습니다.
좋은 생각을 계속 떠올리려 하거나
싫은 생각을 지워버리려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화를 내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화를 내되 '화냄' 그 자체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화냄 그 자체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화내는 그 순간 온전히 알아차릴 수 있어야 휘둘리지 않습니다.
'화'라는 그 비실체적인 마음에 노예가 되어
상대를 질책하고 욕하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다만 이 상황에서는 화내는 마음을 내어야 하기에
화를 내는 것일 뿐입니다.
화가 나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깨어있는 화를 내는 것이란 말입니다.
내 분에 못 이겨 화를 내고 질책하고
그러는 것은 화냄에 머무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화를 내고 나면 그 마음이 오래가게 마련입니다.
머물러 있는 마음 때문입니다.
모든 일을 함에 있어 머물러 있지 않는 마음이라야 합니다.
끊임없이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내라'를 되풀이하시기 바랍니다.
포교를 하거나 남을 도와주고도
포교했다, 도와주었다는 相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절에 가서 기도를 하고도 기도했다는 상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내 이름이 세상에 알려질 때에도,
내가 한 일이 크게 칭찬을 받게 되었더라도
함이 없이 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머물러 있지 않음이야말로
생활 속에 있으면서 생활을 초월하고 사는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삶이 고(苦)인 세상 속에서 '삶은 苦가 아니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머물지 않으면 괴로울 것이 없습니다.
머물지 않으면 삶이 如如(여여)합니다.
마음이 어디에도 머물지 않기에
괴로움이든 답답함이든 붙을 사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머물고 나야 거기에 괴로움이든, 기쁨이든 붙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머물지 않음은 그대로 해탈입니다.
그대로 부처님 마음입니다.
'삶의 나침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自笑, 孤笑, 獨笑 - 다산 정약용 (0) | 2018.10.08 |
---|---|
Guest House by Rumi (0) | 2018.08.29 |
<들풀> 류시화 (0) | 2018.08.21 |
신과의 인터뷰 (0) | 2018.08.16 |
한 생각(一念子) (0) | 2018.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