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치료가 필요할 때마다 펼쳐보는 책, 그래서 가방이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책, 선가귀감(禪家龜鑑). 이 책은 1564년(명종 19)에 서산대사 청허휴정이 지은 일종의 불교수행 지침서다. 휴정은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 호는 청허(淸虛)이며, 묘향산(妙香山)에 오래 머물러 서산(西山)대사라 부른다
1.
여기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며, 난 것도 아니며 죽음도 없다. 이름 지을 길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붓다 가르침과 선 수행의 진수만을 모아놓은 이 책은 첫 장부터 알음알이로 헤아릴 수 없으니 묘(妙)하다. 도리가 없다. 한 생각 ‘탁!’ 한 번 깨뜨릴 때까지 붙들고 씨름할 수밖에..
23.
말을 배우는 무리들은 말할 때에는 깨친 듯하다가도, 실제 경계에 부닥치게 되면 그만 아득 캄캄하게 되나니, “말과 행실이 서로 틀린다.”는 것이 이것이다.
책이 전하는 가르침은 敎와 禪의 차이에서부터 마음의 본질,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법, 염불의 중요성, 출가인의 자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54.
경을 보되 자기의 마음속을 향하여 공부를 지어가지 않게 되면, 비록 만 권의 대장경을 다 보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
법(法)은 본래 말로 설명할 수 없다지만 책 곳곳의 가르침은 나처럼 생각 생각에 시름시름 앓는 하근기(下根機) 중생들에게 더없이 소중하다.
동념즉괴(動念卽乖) 한 생각이라도 일으키게 되면 곧 어긋나 버린다.,
절려망연(絶慮忘緣) 헛된 생각과 인연을 끊을지어다.
현전일념(現前一念) 지금 나타난 한 생각이 전부이다.
당팔풍경 심부동마(當八風境 心不動麼) 여덟가지 바람이 불어올 때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 여덟 가지 바람(八風)은 이(利, 나의 이익), 쇠(衰, 내 힘의 쇠퇴), 훼(毁, 나를 비난 공격하는 것), 예(譽, 나를 높이 평가하는 것), 칭(稱, 나를 칭찬하는 것), 기(譏, 나를 비웃는 것), 고(苦, 고생되는 것), 락(樂, 즐거운 것)를 뜻한다.
부자굴 부자고(不自屈 不自高)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스스로 높이지도 말라.
수본진심 제일정진(守本眞心 第一精進) 본바탕 천진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으뜸가는 정진이다.
염기즉각(念起卽覺) 생각이 일어나면 곧바로 깨달아라
유구개고 불여무사(有求皆苦 不如無事) 구하는 것은 모두 고통이 되니 일 없는 것만 못하니라.
짧지만 구절구절마다 담긴 청허선사의 설법은 마치 임제록 속편을 보는 듯하다. 올바른 수행을 위한 모든 것을 담았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선가귀감을 잠시 내려놓고 서산대사의 ‘해탈(解脫)’ 시를 읽는 것도 위안이 된다.
근심 걱정 없는 사람 누구인가.
출세하기 싫은 사람 누구인가.
시기 질투 없는 사람 누구인가.
흉허물 없는 사람 어디 있겠소.
가난 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를 가졌다 기죽지 말고,
못 배웠다 주눅 들지 마소.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외다.
가진 것 많다 유세 떨지 말고,
건강하다 큰소리치지 말고,
명예 얻었다 목에 힘주지 마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더이다.
잠시 잠간 다니러 온 이 세상,
있고 없음을 편 가르지 말고,
잘나고 못남을 평가 하지 말고,
얼기설기 어우러져 살다나가세.
다 바람 같은 거라오
뭘 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 순간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 바람이고,
오해가 아무리 커도 비바람이라오.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오.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돈다오.
다 바람이라오.
버릴 것은 버려야지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하리요.
줄게 있으면 줘야지
가지고 있으면 뭐하오.
내 것도 아닌데,
삶도 내 것이라고 하지마소.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 뿐인데
묶어 둔다고 그냥 있겠소.
흐르는 세월 붙잡는다고 아니 가겠소.
그저 부질없는 욕심일뿐,
삶에 억눌려 허리 한번 못 펴고
인생계급장 이마에 붙이고
뭐 그리 잘났다고 남의 것 탐 내시오.
훤한 대낮이 있으면 까만 밤하늘도 있지 않소.
낮과 밤이 바뀐다고 뭐 다른 게 있소.
살다보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다 있는 것,
잠시 대역 연기 하는 것일 뿐,
슬픈 표정 짖는다 하여 뭐 달라지는 게 있소.
기쁜 표정 짖는다 하여 모든 게 기쁜 것만은 아니요.
내 인생 네 인생 뭐 별거랍니까.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고 불다 보면
멈추기도 하지 않소.
그게 다 사는 거라오.
삶이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구름이 스러짐이다.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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