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박구리, 베란다 습격사건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워서 그런지 가끔 새들이 놀러 오곤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아침부터 새 두 마리가 베란다에 설치한 덩굴지지대 위에서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제주의 대표적인 텃새 직박구리다. 참새 못지않게 흔하지만 활동영역은 참새보다 훨씬 넓다고 한다.
잠시 후 어디론가 떠난가 싶더니 다시 베란다로 왔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부리를 이용해 덩굴을 유도하기 위해 설치한 끈을 뜯어버리는 게 아닌가. 텃새가 내 영역을 침범해 텃세를 부리다니....
비로소 며칠전 의문이 풀렸다. 동여맨 끈들이 느슨해지고 일부 뜯겨 있는 원인이 강한 비바람이 아니라 바로 직박구리가 범인이었다.
재미를 붙였는지 두 녀석은 어디론가 갔다가 다시 찾아오기를 반복했다. 덩굴을 유도하기 위해 설치한 끈이 직박구리 장난감이 된 셈이다. 이러다 줄이 다 끊어질 것 같아 유리창 문을 열고 "야, 이 놈들아. 딴 데 가서 놀아!"라고 소리를 치자 주변을 서성이다 날아가버렸다.
베란다에 덩굴 지지대를 설치한 건 5월 초다. 저녁이 되면 창문 너머로 앞집, 옆집이 훤히 다 보여서 서로 불편하지 않을까 하여 고민 끝에 일을 벌였다. 나무시장에서 학재스민도 사오고, 무료로 분양 받은 덩굴장미도 있다. 또 주변에 널려 있는 계요등, 마삭줄, 사위질빵, 인동덩굴, 마, 환삼덩굴, 송악, 으아리 등을 데려다 삽목을 하여 부지런히 키우는 중이다.
▲ 왼쪽부터 계요등, 덩굴장미, 마삭줄, 인동덩굴.
반갑게 찾아 온 손님을 환대하지 못할망정 내쫓을 수는 없는 노릇. 덩굴식물들이 어서 자라 줄을 감싸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