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憂所

바늘귀 가까스로 통과한 가난뱅이

달의궁전 2018. 8. 12. 09:44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했다. 바늘에 실 꿰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순간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얼굴로 나이를 속일 수 있을지언정 눈은 세월과 한통속인가 보다. 여러 차례의 시도에도 번번이 실패하니 온갖 상념이 떠오른다. 바늘귀가 너무 작은 건가? 바늘과 실을 1000원 주고 샀는데 싸구려를 샀나? 이순(耳順)도 안 지났는데 노안이 오나보다.....

 

다시 눈을 가늘게 뜨고 눈가에 힘을 잔뜩 줘 몇 차레 실꿰기 시도 끝에 드디어 통과. 감(感)은 살아있나 보다. 잠시 흐뭇하고 뿌듯하다. 인터넷을 살피다 보니 바늘에 실을 꿰는 쉬운 방법이 있다. 실 끝부분을 테이프로 감은 후 끝을 뾰족한 모양으로 잘라 준 뒤 바늘귀에 끼우면 아주 쉽다고 한다.

 

 

마태복음 19장 24절이 떠오른다.

 

"Again, I tell you, it is easier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than for a rich man to enter the kingdom of God.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그나저나 난 부자와는 한참 거리가 먼 가난뱅이인데, 낙타도 아닌 가느다란 실을 겨우 통과하니 마음이 좀 서운하다. 그런데 하필 왜 낙타일까? 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다 어디에선가 ‘낙타’가 아니라 ‘밧줄’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본래 아랍어로 쓰여진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아랍어 원어인 'gamta(밧줄)'를 'gamla(낙타)'로 오역했다는 말이다. 어찌 보면 이 말이 더 합리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또 불교선(禪)에 마음과 바늘관련 이야기가 있다

 

心心心難可尋 심심심난가득

寬時偏法界    관시변법계

窄也不用鍼    착야불용침

 

마음 마음 하는 그 마음 찾을 길 어려워라. 너그러울 땐 법계를 덮지만 좁아지면 바늘 끝도 용납 않네

<달마 혈맥론 中에서>

 

바늘 끝 꽂을 자리도 없을 만큼 좁아진 마음은 극심한 가뭄으로 갈라지고 황폐해진 땅과 다름 없으니 삭막하다. 속좁은 마음 내보이려 여태 살아왔나하는 생각에 씁쓸하다. 밖으로 구하고 찾아 헤매느라 마음이 미세먼지로 덮여 오염 된 줄도 모르니 안쓰럽다. 심즉불(心卽佛), 즉 마음이 부처라 했다. 본래 자리는 청정하다는 말이다. 날마다 마음을 돌아보며 미세먼지를 걷어내어 '바늘'도 꽂고, '밧줄'도 쟁여 놓고, 이왕이면 '낙타'도 여유있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봄이 화급하구나.